"치매 판정을 받은 부친께서 형에게만 아파트를 증여하셨습니다. 당시 부친의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으셨는데, 이를 무효로 할 수 있겠습니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부모의 재산 증여를 둘러싼 형제간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모가 치매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증여의 경우, 다른 자녀들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게 됩니다.
본고에서는 증여무효소송의 핵심 요건인 '의사능력' 입증 방법과, 실제 법원이 무효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판례를 통하여 검토하고자 합니다.
가장 흔한 오해는 "부모가 치매약을 복용하고 계셨으므로 당연히 무효"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단순히 고령이거나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증여를 무효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소송의 핵심은 '의사능력'의 유무입니다. 즉, 증여 계약서를 작성할 당시에 '자신의 재산이 누구에게 이전되고, 그로 인하여 자신의 재산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능력이 있었는지를 입증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입증 책임은 무효를 주장하는 자녀(원고)에게 있습니다.
물론 의학적 판단 기준은 존재합니다. 법원은 치매 검사 수치를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무효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되는 수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 K-MMSE (한국형 간이정신상태검사): 14점 이하
· CDR (임상치매평가척도): 2점 이상
· GDS (전반적 퇴화 척도): 6단계 이상
그러나 이러한 점수가 절대적인 판단 기준은 아닙니다. 실제 판례에서는 이 수치를 상회하거나 하회하는 상황에서도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사한 치매 환자의 증여 사안이라도, 구체적인 정황에 따라 법원의 판단은 상이하게 나타납니다.
가. 무효로 인정된 사례 (전주지방법원)
중증 치매(CDR 3점, MMSE 16점)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 증여가 이루어진 경우입니다. 법원은 피상속인이 증여의 법적 의미를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고 판단하여 증여 계약을 무효로 선고하였습니다.
나. 유효로 인정된 사례 (서울중앙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등)
반면, 알츠하이머 초기(CDR 2점)나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증여가 유효하다고 판단된 사례들이 있습니다. 법원이 유효성을 인정한 결정적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직접 방문: 피상속인이 직접 주민센터를 방문하여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음
· 전문가 확인: 법무사가 증여 의사를 재차 확인하고 사실확인서를 작성함
· 자필 서명: 등기 절차에서 서류를 직접 작성하거나 서명함
· 증상의 변동성: 치매 증상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시기였음
즉, 다소 어눌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관공서를 방문하거나 전문가 앞에서 명확히 의사를 표현한 경우, 법원은 의사능력을 인정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결국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단순히 "당시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셨다"는 주관적 진술보다는 다음과 같은 객관적 자료의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 증여 시점 전후의 진료기록 및 의무기록 감정서
· 당시 피상속인의 상태를 입증할 수 있는 금융거래 내역 (직접 인출 여부 등)
· 증여 과정에 참여한 법무사 또는 증인의 진술
증여무효소송은 법원이 매우 엄격하게 판단하는 소송 유형 중 하나입니다. 이미 등기가 이전된 법률행위를 번복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치매 진단을 받았으므로 승소할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으로 접근하여서는 안 됩니다. 의무기록 감정을 통하여 당시의 인지 능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증여 과정에서의 하자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치밀한 소송 전략이 필요합니다.
부모의 피땀 어린 재산이 부당하게 이전된 상황이라면, 소송 초기부터 전문적인 법리 검토를 통하여 승소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하시기 바랍니다.